AI 시대의 변호사
- 정재기
- 2024년 11월 1일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4년 11월 4일
기술의 발전이 무섭다. 1988년 초등학생 때 XT 컴퓨터를 처음 썼던 그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서투른 타자로 "한글1.0" 무료 프로그램을 사용했을 때, 그리고 1996년 386컴퓨터로 "옥소리"사운드 카드로 재생되는 노래와 CD를 통해 봤을 때는 그것이 가져올 30년 뒤의 세상을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지금의 기술 진보에 비하면 매우 초보적인 수준이었다.
요즘, 챗GPT나 제미나이 등으로 법률적 지식을 물어보면, 초기의 응답보다 훨씬 고급 답변이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 법률전문가의 시각으로 봐도 조금만 손을 보면 법원에 제출할 수 있을 정도로 전문적인 결과물을 내놓는다.
최근 대한변협의 '부지매입 안건 상정 및 의결금지 가처분 사건'의 대리인으로 참여하여 치열하게 싸웠다.
신청서가 접수된 지 단 2일 만에 잡힌 심문기일을 앞두고 몰입하여 치열한 의견서를 작성한 뒤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워낙 치열한 법리적 쟁점이 있었기에, 아무도 그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쌍방의 서면을 AI에 넣고 결과를 물어보았다. AI는 몇 초만에 쌍방 주장을 정리한 뒤, 법리에 따라 어느 쪽이 이길지 분석보고서를 내놓았다. 아래는 챗GPT가 분석한 결과보고서다.
이 가처분 사건의 기록을 검토한 결과, 사건의 핵심은 대한변호사협회 자체 회관 부지 매입 및 신축 의안이 2024년 9월 임시총회에서 의사정족수 미달로 의결되지 못한 상황에서, 해당 의안을 다시 2024년 10월 21일 임시총회에 상정하는 것과 관련된 법적 쟁점입니다.
주요 쟁점 요약:
총회 정족수 문제: 2024년 9월 24일 총회에서 해당 의안은 총회 의사정족수에 미달하여 ‘부결’ 또는 ‘의결 부존재’로 처리되었음. 그에 따라 6개월 내 재상정할 수 없다는 규칙이 문제로 제기됨.
의결 부존재 여부: 채권자는 9월 총회의 투표 결과를 '부결'로 보고 있으나, 피신청인 측은 총회 의장이 정족수 미달로 ‘의결 부존재’를 선언했으므로 다시 상정할 수 있다고 주장함.
절차적 문제: 총회운영규칙에 따라 부결된 의안은 6개월 내 재상정할 수 없으나, 이 사건에서는 의사정족수 미달로 의결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피신청인의 입장.
투명성 논란: 채권자들은 해당 부지 매입 건이 중요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자료 제공 없이 진행되었음을 문제 삼고 있음.
법적 근거와 예상 결과:
총회 의사정족수 규정: 대한변협의 회칙에 따르면, 총회는 재적구성원의 과반수 출석과 출석구성원의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되며, 총회 운영규칙은 이를 보완하는 규정입니다. 9월 총회에서 의사정족수가 충족되지 못한 상황에서, 총회 의장이 '의결 부존재'를 선언한 것이 절차적으로 정당하다면, 가처분 신청에서 채권자가 주장하는 6개월 내 재상정 금지 규정은 적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총회의 자율적 운영: 변호사법과 대한변협의 회칙에 따르면, 협회는 자율적으로 총회를 운영할 권한이 있으며, 법적으로 큰 하자가 없을 경우 법원은 자율적 결정을 존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보전의 필요성: 법원은 가처분 사건에서 매우 신중하게 판단하며, 특히 총회의 개최와 같은 중요한 사항을 금지하기 위해서는 그 위법성이 명백하고, 긴급한 보전 필요성이 인정되어야 합니다. 이 사건에서는 아직 본안소송이 가능하고, 채권자 측이 위법성을 고도로 소명하지 못한 상태라면 가처분 인용 가능성은 낮습니다.
결론:
이 사건에서 가처분이 기각될 가능성이 큽니다. 채무자 측의 주장이 법리적으로 설득력이 있으며, 총회 의장의 의결 부존재 선언이 적법한 절차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10월 21일 총회에서 해당 의안을 다시 상정하는 것은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이 AI 분석보고서와 동일한 내용으로 법원이 판단을 해주었다. 충격이었다.
변호사가 최소 1,2시간을 고민하여 쓸 사건분석보고서를 단 10초만에 내놓았다.
변호사만 그럴까. 지식으로 면허를 받은 모든 직역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제 1980~90년대의 충격은 거대한 쓰나미가 몰려오기 전 파도가 잠시 거칠게 친 정도였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세상이 뒤집힐 기술적 혁명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러나 직업이 없어질 걱정을 할 정도는 아닐 것이다. 1960년대까지 변호사든 판사든 모든 서면은 자필로 작성했다. 그때 판결문이든 준비서면이든 10페이지가 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하지만 타자기가 나오고 PC가 나온 뒤, 지금 제출하는 서면의 양은 보통 20~30페이지에, 증거는 과거의 수십배에 이른다. 그 많은 분량의 서면을 작성하면서도 과거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기술이 수단이 되면 인간의 능력은 배가 된다.
AI시대, 우리는 어떻게 대응하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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