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봄 영화를 보면, 전두환의 반란군은 쿠데타 성공 전까지 계속 최규하 대통령의 재가를 받지 못했다고 나온다. 실제 전두환은 2차례에 걸쳐 최규하의 재가를 받으려 하였으나, 국방부장관의 허가가 없다는 이유로 반려되었다.
그런데 당시 전두환이 군대까지 동원하여 참모총장을 체포하였는데, 왜 재가가 필요했을까?
영화에서는 "쿠데타의 합법화"를 위해서라 설명하는데, 법적으로는 어떤가.
당시는 계엄상태였다. 박정희 대통령 시해 후 최규하 대통령은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계엄을 선포한다. 당시 선포된 계엄은 비상계엄이다.
비상계엄은 전쟁 또는 전쟁에 준할 사변이 있어야 하고, "적의 포위공격으로 인하여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된 지역"에 선포되는 것이다(당시 계엄법 제4조).
당시 계엄법 제4조 비상계엄은 전쟁 또는 전쟁에 준할 사변에 있어서 적의 포위공격으로 인하여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된 지역에 선포한다.
문제는 최규하의 비상계엄 선포지역에서 제주도가 제외됐다는 점이다. 계엄법은 계엄 시행 시 계엄사령관이 "국방부 장관"의 지휘감독을 받도록 하고 있지만, 전국 계엄은 "대통령의 지휘감독"을 받도록 하고 있다.
제9조 계엄사령관은 계엄의 시행에 관하여서는 국방부장관의 지휘감독을 받는다. 단 전국을 계엄지역으로 하는 경우에는 대통령의 지휘감독을 받는다.
그런데 최규하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제주도를 제외하였으니, 지휘감독권자는 국방부장관일 뿐 대통령이 아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령관이 모든 '행정사무'와 '사법사무'를 관장하고(제9조), 사법기관은 계엄사령관의 지휘감독을 받게 된다(제11조). (법원이 계엄사령관 밑으로 들어가는 것 자체가 놀랍다.)
계엄법
제9조 계엄사령관은 계엄의 시행에 관하여서는 국방부장관의 지휘감독을 받는다. 단 전국을 계엄지역으로 하는 경우에는 대통령의 지휘감독을 받는다.
제10조 경비계엄의 선포와 동시에 계엄사령관은 계엄지역내의 군사에 관한 행정사무와 사법사무를 관장한다.
특히, 계엄 하에서는 체포, 구금, 수색 등에 대해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 즉,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13조 비상계엄지역내에서는 계엄사령관은 군사상 필요할 때에는 체포, 구금, 수색, 거주, 이전, 언론, 출판, 집회 또는 단체행동에 관하여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 단 계엄사령관은 조치내용을 미리 공고하여야 한다.
자, 그렇다면, 당시 상황을 보자.
계엄사령관인 정승화는 모든 "사법사무"를 관장하고, 사법기관을 지휘감독하는 위치에 있다. 당시 비상계엄이었지만 제주도가 제외되어 있으므로 최고 지휘감독 책임자는 대통령이 아닌 국방부장관이다.
계엄사령관이 사법사무를 관장하므로 그를 체포하려면 계엄법상 지휘책임자인 국방부장관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 (대통령이 아니다) 그런데 전두환이 국방부장관을 건너뛰고 대통령에게 바로 달려간 것은 사실 계엄법에 맞지 않다. 전두환이 국방부장관의 승인만 얻으면 체포할 수 있었기 때문인데, 왜 최규하에게 갔을까? 국방부장관이 유고라면, 대통령 재가가 필요할 여지는 있다.
법적으로 정승화 참모총장을 영장없이 체포한 것은 계엄법 상 가능하나, 사법기관 지휘감독자인 계엄사령관을 최고 지휘책임자인 국방부장관(또는 유고 시 대통령)의 승인없이는 체포가 적법하지 않다.
영화에서 대통령이 "국방부장관의 승인을 얻어오라"는 것은 계엄법에 따른 정당한 절차를 요구한 것이긴 하다. 하지만, 대통령이라면 불같이 화를 내고 전두환을 즉시 체포하도록 하거나 즉시 직위해제 하여야 했다. 대통령이 대통령같지 않았고 국방부장관이 장관답지 못했기에 전두환의 전횡을 야기한 것이리라.
자기 직위, 자기 직분에 100% 충실할 때 사회는 온전해진다.
대통령이 대통령답지 못하고, 국방부장관이 국방부장관답지 못했기에, 전두환이라는 역사적 반동을 배출해낸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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