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인이 탁구를 치고 선배와 싸웠다는 해외 뉴스가 뜨자, 이강인 선수에 대한 비난의 글들이 인터넷에 도배하더니, 이강인 선수를 광고로 쓴 업체까지 공격하며 광고계약 해지를 집단적으로 압박했다. (물론 이강인이 손흥민에게 사과함으로써 어느 정도 일단락 된 듯하다)
우리 사회는 늘 어떤 이슈가 생길 때마다, 특정인에 대해 집단 린치에 가까운 비판적 목소리를 낸다. 물론 그 사람이 잘못했고,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행동을 했다손 치더라도, 그 정도는 과하다.
사실관계가 어떤지, 상대방의 주장은 또 어떻게 다른지, 어떤 사람의 주장을 검증할 다른 증거나 목소리가 있는지, 상황을 다르게 해석할 여지는 없는지는 고려하지 않는다. 특히 잘못한 사람에 대해 광고 계약 해지와 영화나 방송출연을 막는 등의 경제적 활동을 중단시키는 방식으로 대하는 것이 정당한지에 대한 어떠한 논의도 이뤄진 바 없이 일방적인 목소리만 넘쳐난다.
이른바, 캔슬 컬처의 하나다. 한국의 캔슬 컬처는 다른 나라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잔혹한 면이 있다. 캔슬 컬처(영어: cancel culture) 또는 취소 문화는 주로 저명인을 대상으로 과거의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행동이나 발언을 고발하고 거기에 비판이 쇄도함으로써 직업이나 사회적 지위를 잃게 만드는 소셜 미디어 상의 현상이나 운동을 말한다.
최근 고 이선균씨나 지디에 대해, 마약 사건을 무차별적으로 보도하고, 사회적으로 매장시켜 결국 이선균을 자살에 이르게 한 것도 이 지독한 캔슬 컬처의 하나다.
이강인이 선배(?)의 말을 듣지 않고 탁구를 치고, 선배들과 다툼이 있었다고 이강인을 매장하는 이 폭력적 문화는 대체 왜 시정이 되지 않는 것일까. 최소한 당시 상황에 대한 객관적 분석과 비평조차 없는 이 군대식 여론문화는 무섭기까지 하다. 언제든, 누구든 걸리면, 모든 것을 잃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따라서 이강인의 자유에 대한 책임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책임이 그 사람을 매장시키는 방법으로 행해지는 것은 책임을 넘는 것이다.
그것은 그 사람을 매장시키도록 자유롭게 행동하는 사람이 책임져야 할 일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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