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적, 암기, 그리고 1만 시간
- 정재기
- 2024년 11월 20일
- 2분 분량
1만 시간의 법칙이란 책은, 1만 시간동안 한 분야에 집중하면 그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의 책이다. 당시 이 책이 나오고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지만 곧 묻혔다. 1만 시간이면, 하루 8시간씩 공부든 일을 하면 약 3년의 시간이다. 3년 간 하나의 일에 집중했을 때 그 분야의 경지가 트이는데, 그것을 풀어낸 것으로 보인다.

흔히 일반인이 법조인을 비판하는 가장 큰 것 중의 하나가 '법조문을 암기'를 한다는 것이다. 암기하지 않고 창의적인 인재를 양성하겠다며 로스쿨까지 도입한 바 있다. 그런데, 그 후 법조계에 창의적 인재가 쏟아졌는지 의문이다.
그런데 법학을 비롯한 모든 직업과 일의 기본은 암기다. 기본원칙을 숙지하고, 체화해야 한다. 법률도 마찬가지다. 민법과 형법, 헌법이라 불리는 기본3법의 기본 틀과 내용을 몸에 익혀야 한다. 몸에 익히기 위해서는 일단은 암기가 돼 있어야 한다. 보고 이해하고 또 보고 이해하는 과정이 계속 반복되면 자연스레 그 조문과 판례, 법리는 몸속에 체화되어 녹아든다. 흔히 말하는 '법조인의 암기'라고 하는 것은, 그 과정의 매우 극 초반의 일에 대한 것일 뿐이다.
로스쿨을 갓 졸업한 수습변호사가 초반엔 조금 헤매이지만, 로스쿨에서 기본법률을 이해하고 체화한 변호사들은 곧 두각을 나타낸다. 그 변호사의 결과물이 교육의 틀을 벗어나 창의의 영억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 시점은 로스쿨을 졸업한 뒤 빠르면 1년 늦으면 2년이 지난 시점부터다. 그때 창의성의 싹이 보이지 않으면 학습의 기본을 되돌아봐야 한다.
모든 사람은 AI가 곧 세상을 지배할 것처럼 걱정(환호, 기대)한다. AI의 기본이 되는 LLM이라는 것은 지금까지 인간이 만들어 낸 것들을 익혀 체화한 것일 뿐이다. 컴퓨터의 연산과 저장속도가 어마무시해서 "암기"라는 전통적 용어가 아닌 "LLM"으로 표현한 것이다. 즉 AI는 암기에 기초를 둔 학습모델 컴퓨터이다.
문제는, 이 AI가 단순 암기에 그치지 않고 창의적인 역할까지 해 낸다는 것이다. 그림과 소설, 그리고 전문적 법률에 대한 분석까지 해낸다. 지금까지 인간이 기존 '(암기된) 지식'을 바탕으로 해 온 일들을 하고 있다.
AI의 창의성은 AI에 저장된 대용량 언어학습모델에 의한 것처럼, 인간의 창의성도 머릿속 어딘가에 저장된 암기된 지식의 변용이다. 창의적인 것에만 기대어 기본을 충실하지 않는 수많은 학생과 지식인, 전문가들이 어느 순간 사라지는 것은 인간의 뇌와 몸에 체화되고 저장된 대용량 지식이 부족하거나 허술하기 때문이리라.
창의성은 기본에서부터 나온다. 그 기본은 자기 분야(공부, 지식, 직업)의 기본을 암기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암기는 이해와 체화다.
Comments